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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여행지: 한국스러운 골목 북촌 한옥마을

by 라라초이 2023. 2. 7.

내가 가려고 적어놓았던 메모장의 여행지를 공유합니다. 

 

개요

서울특별시 종루고 가회동, 삼청동 내의 한옥 밀집 지역을 칭합니다. 

지리상으로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의 사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선 왕조의 두 궁궐 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예로부터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의미로 '북촌'이라 불리었습니다. 하지만 엄밀하게는 가회동, 계동, 화동 등 일부 법정동만을 포함합니다. 많은 사적과 문화재, 민속자료가 있어 도심 속의 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경복궁과 마주하고 있는 삼청동길 주변에는 많은 갤러리가 늘어서 있고 화동길을 비롯한 곳에서는 각종 먹거리와 특색 있는 카페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다세대가구 주택이 급속하게 들어서며 많은 수의 한옥이 사라졌지만, 현재까지 양호한 상태의 한옥이 군집을 이룬 채 일부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회동 11번지, 31번지, 33번지 일대는 대표적인 한옥 밀집 지역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지명의 유래와 역사 

서울 북쪽에 위치한 한옥동네라는 뜻으로 조선왕조 때부터 왕족, 양반, 관료 출신들이 살았던 고급 가옥이 대부분이라 하여서 일각에서는 '양반촌' '양반동네'라고 불렸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한옥이 일부 중 개축되고 1992년 가회동 한옥보존지구에서 해제되어 한옥 이외에도 일반 건물들도 들어섰습니다. 특히 원서동은 업자들이 유혹해 빠르게 빌라가 들어서 이전의 풍경을 잃었다고 합니다. 2001년 서울시가 '북촌 가꾸기 사업'을 진행하여 한옥과 주변 경관을 개선해 2009년 유네스코 아태문화유산상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한국 최초의 데빌로퍼라 불리는 부동산개발업자 정세권이 조성한 한옥대단지입니다.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 정세권은 1919년 상경한 뒤 건축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서울(경성부)은 급팽창하고 있었습니다. 지방 빈농의 유입도 증가하고 일본인의 서울 이주도 급증했습니다. 인구 증가는 주택난을 불렀습니다. 당시 청계천 남쪽에는 일본인들이 주로 모여 살았는데 일본인들이 증가하자 청계천 북쪽으로 확장을 노렸고, 조선총독부는 정부기관을 국공유지에 먼저 들인 후 일본일을 진출시키는 방식으로 청계천 북쪽으로 일본인 거주지 확장을 주도하였습니다. 

당시 북촌은 일제 침략으로 어려워진 권세가들이 내놓은 집들이 많았습니다. 정세권은 조신인의 영역을 지키고자 조선인 건설업자들과 함께 민간 주택 건석 사업에 진출하였습니다. 권세가, 양반들이 소유하였던 넓은 토지나 택지를 쪼개 여러 채의 작은 규모의 한옥을 대량 공급함으로써 조선인 주거지역을 확보하고 고유 주거 방식을 잃어버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러한 한옥 집단지구에 공급된 한옥은 전통 한옥의 구조를 ㅁ자 안에 집약하고 부엌과 화장실을 신식으로 개선하는 등 근대적인 편리함과 생활양식을 반영한 도시한옥 이령 개량 한옥이었습니다. 

소규모 도시한옥은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집값이 한몫했기 때문입니다. 정세권의 회사인 건양사는 한 해 평균 300채의 한옥을 공급했는데 1920년대 한성의 연간 주택 공급량은 1,700채 정도였고 정세권은 그중 20%를 담당했고 조선의 건축왕이라 불렸습니다. 북촌 한옥의 대부분은 정세권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출처: 위키백과

특징

한옥의 대부분이 팔각지붕을 한 기와집이며, 대부분의 구조는 평면이 'ㄷ'이나 'ㅁ'모양으로 된 도시형 한옥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마당이 노출된 전통 한옥과 달리 길에서 보면 높은 대문과 방으로 막혀 집 안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2000년대 들어 개축하지 않은 한옥들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한옥 개축을 장려한 터에 최근 지은 한옥은 전형적인 도시 한옥에서 많이 벗어 나 있습니다. 다만 여전히 담장은 높은데 범죄 위험도 있지만 관광객이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중매체 

2009년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극 중 김자옥이 운영하는 하숙집이 여기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무한도전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 특집과 1박 2일 서울 특집으로 매체에 방영되기도 하였습니다. 

 

북촌 8경 

서울시는 북촌을 서울의 대표 문화 관광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북촌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지점 8곳을 지정해 방문객들 위한 사진 촬영대를 설치하였습니다. 북촌의 중심 관광자원이라 할 수 있는 한옥 경관 그리고 한옥이 중심을 이루는 골목길이 주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북촌 8경은 북촌 한옥 마을에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문화재와 한옥들을 선으로 이어주고 있습니다. 

북촌 1경은 창덕궁 전경으로 돌담 너머로 창덕궁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입니다. 북촌문화센터에서 나와 북촌 길 언덕을 오르면 나오는 장소입니다. 북촌 3경은 북촌로 12길 일대로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북촌 4경은 북촌로 11길 언덕입니다. 북촌 5경은 가회동 골목길(내림)로 밀집된 한옥의 경관과 흔적이 가장 선명히 남아 있는 곳입니다. 북촌 6경은 가회동 골목길(오름)로 한옥 지붕 사이로 펼쳐지는 서울의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북촌 7경은 가회동 31번지로 고즈넉한 분위기의 소박한 골목이며 주민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북촌 8경은 삼청동 돌층계길로 북촌로 5나 길에서 삼청로로 내려가는 돌계단입니다. 커다란 암반 하나를 통째로 조각한 조경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호텔스닷컴

문제점 

북촌 지역은 거주지역으로 엄연히 사람이 사는 곳이며, 관광지화된 지도 불과 10여 년 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관광객 입장에선 그저 돌아다니고 보고 즐기는 광광지일뿐입니다. 이점은 관광지화된 국내외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로 동대문과 면세점을 돌던 저가 중국 여행사들이 비용을 낮추기 위해 무료인 북촌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가보면 거주민보다 한복을 입고 사진 찍는 외국인이 더 많은 곳입니다. 이 때문에 여러 마찰이 발생하게 됩니다. 

2001년부터 6년여간 했던 북촌 가꾸기 사업도 또 다른 문제점을 낳았는데 마을 정비에 따라 지가가 1억 원 근처까지 치솟아 원주민들이 떠나고 그 자리에는 재벌집 금수저들이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한옥도 콘크리트를 쓰고 내부까지 현대식으로 만들어 한옥 그 자체의 정체성을 잃기도 하며 투기도 빈발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인 거주자 데이비드 킬번이 한옥 원형보존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교통 

도시 철도는 수도권 전철 3호선 안국역이 가장 가깝습니다. 

 

<출처: 나무 위키, 위키 백과>